Skip to content

World Mission in Christ

월간기도 원본 <<
  • 월간기도 85 호 (2009. 5. 1.)
  • WMC Admin
    조회 수: 2945, 2012.08.16 13:41:39
  • 창간호                                                                                                                                                   제85

    200251일                                                                                                                           200951

     

                                  월기 도

                                    Monthly Prayer Journal

                                           주여, 나로 기도의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 ()로 드리는 기도 -------------------- 김정복

                    * 성경에 나오는 시 ----------------------작자미상

                    * 산상수훈을 통한 예수님의 기도교육 (1) ------김정복

                    * 구약에 나타난 기도 (76) ----------------- 김시남

                    * 시편정해 (85) ------------------------- 최선호

                    * 새 번역 사도신경 해설(11) ---------------- 이종윤

                    * 목양칼럼 (43) --- 부모의 네 가지 영향력-----차현회

                    * 신앙산책 (12) -- 하나님의 본래적 영광 (1)---- 심영견

                    * 목회현장 (3) ---- 참 지도자의 모습(3) ----- -송정명 --

                    * 미국교회 역사 (40) ---------------------- 이정남

                    * 김정복 목사의 기도행전(2) -- 모로코 왕국(1)-- 기도학교

                    * 김정복 목사의 기도세미나를 위한 특별기도 부탁-기도학교

                    * WMC 국제기도학교 안내 ----------------- 기도학교

                    * 성경적 기도와 큐티 세미나 및 사경회 안내 ---- 기도학교

     

     




    ()로 드리는 기도

                                          교회를 위한 기도

                                                                                            김정복 목사 (본지 편집인 겸 발행인)

     

    주님, 교회를 위하여 기도합니다.

    주님의 몸된 교회는 거룩한 곳입니다.

    주님의 몸된 교회는 기도의 집입니다. (19:46)

    주님의 몸된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그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 편에 앉히사

    모든 정사와 권세와 능력과 주관하는 자와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또 만물을 그 발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세우셨습니다 (1:20-22)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입니다 (1:23)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유대인들이 가로되

    이 성전은 사십 륙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뇨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입니다 (2:19-21)

     

    주님, 교회를 위하여 기도합니다.

    교회는 거룩한 곳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는 청결한 곳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는 기도의 집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는 말씀의 집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는 선교의 집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는 사랑의 집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는 성령의 전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을 만나는 전입니다

     

    주님, 교회를 위하여 기도합니다.

    교회를 거룩하게 하소서 (벧전1:15-16)

    교회를 깨끗하게 하소서

    교회를 성결하게 하소서

    교회를 지키시고 보호하시며 인도하여 주소서






    성경에 나오는 시

                                                              (119:49-56)

                                                                                                                                                                  작자 미상

     

    주의 종에게 하신 말씀을 기억하소서

    주께서 나로 소망이 있게 하셨나이다

    이 말씀은

    나의 곤란 중에 위로라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리셨음이니이다

    교만한 자가 나를 심히 조롱하였어도

    나는 주의 법을 떠나지 아니하였나이다

    여호와여

    주의 옛 규례를 내가 기억하고

    스스로 위로하였나이다

    주의 율법을 버린 악인들을 인하여

    내가 맹렬한 노에 잡혔나이다

    나의 나그네 된 집에서

    주의 율례가 나의 노래가 되었나이다

    여호와여

    내가 밤에 주의 이름을 기억하고

    주의 법을 지켰나이다

    내 소유는 이것이니

    주의 법도를 지킨 것이니이다

     

     

     

     



    산상 수훈을 통한 예수님의 기도교육 (1)

    김정복 목사

     

    1. 예수님의 8복 강해와 기도교육 (1) (5:1-12)

    1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2 입을 열어 가르쳐 가라사대

    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4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5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6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

    7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8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9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10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11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있나니

    12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

     

    1.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Blessed are the poor in spirit, for theirs in the kingdom of heaven.

     

    1)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

    누가 심령이 가난한 자(The poor in spirit)인가?

    2) 심령이 가난한 사람은 기도하는 사람이다.

    심령이 가난한 사람은 하나님을 찾는 사람이다.

    심령이 가난한 사람은 영혼이 깨끗한 사람이다.

    심령이 가난한 사람은 영혼이 때묻지 않은 사람이다

    심령이 가난한 사람은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 사람이다.

    심령이 가난한 사람은 이 세대를 본 받지 않은 사람이다.

    심령이 가난한 사람은 마음을 새롭게 하므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케 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는 사람이다. (12:2)

    심령이 가난 한 사람은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는 사람이다. (12:1)

    3) 이와 같이 심령이 가난한 사람은

    이미 그의 마음에 천국이 있고 하나님께 복을 받은 사람이다.

    이 세상에서의 천국은 여기에 있다 저기에 있다 하는 것이 아니고

    심령이 가난한 사람의 마음에 있는 것이다.

    4) 기도하는 사람은 참으로 심령이 가난한 사람이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예수를 바라보고 (12:2)

    기도하는 사람은 심령이 가난한 사람이다.

    심령이 부요한 사람은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는다

    심령이 부요한 사람은 하나님께 기도할 수 없다.

    심령이 부요한 사람은 하나님을 찾지 않는다.

    심령이 가난한 사람만이 하나님을 찾으며,

    심령이 가난한 사람만이 하나님께 상달되는 기도를 할 수 있는 것이다.

    5) 따라서 기도하는 사람은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2.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Blessed are those who mourn, for they will be comforted.

     

    1)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다.

    누가 애통하는 자(Those who mourn)인가?

    2) 애통하는 사람은 기도하는 사람이다.

    애통하는 사람은 자기의 죄를 통회 자복하며 회개하는 사람이다

    애통하는 사람은 심한 통곡과 눈물로 이웃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이다.

    애통하는 사람은 내 이웃을 위하여 도고(Intercession)하는 사람이다.

    예수님께서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밤을 새워 기도하실 때에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 지는 피 방울 같이 되었습니다 (22:44)

    예수님께서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 고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습니다 (5:7)

    3) 이와 같이 애통하며 기도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위로하시고 응답해 주십니다

    애통하며 기도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위로를 받는 복된 사람이다.

    참된 위로는 하나님이 주시는 사랑과 위로와 평강에 있는 것이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노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14:27)

    4) 기도하는 사람은 애통하는 사람이다.

    매일 새벽에 일어나 기도하며 애통하고,

    철야하며 애통하고, 금식하며 애통하고,

    골방에서 애통하고, 교회에서 애통하고,

    나의 죄를 자복하고 회개하며 애통하고,

    나의 가정을 위하여 도고하며 애통하고,

    나의 이웃을 위하여 도고하며 애통하고.

    교회와 선교를 위하여 도고하며 애통하고,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도고하며 애통한다.

    5) 따라서 기도하는 사람은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구약에 나타난 기도 76

                                        (악인에 대한 불평의 기도, 욥기 21)

                                                                                            김시남 목사 (국제신학대학() 총장/ 구약학 교수)

     

    나는 이번 호에서 구약에 나타나는 기도 중에 악인에 대하여 하나님에게 불평하는 기도를 살펴보며 이러한 기도의 배후에 담겨있는 기도자의 마음에 대하여 독자들과 함께 살펴보려고 한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악인이라고 쉽사리 부르지 못하는 이유 중에 하나는 우리 자신 역시 완전하지 못하다는 자각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자각을 뚜렷하게 가지고 있는 사람이 악인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일반적인 태도는 침묵이다 왜냐하면 자기 자신이 그러한 사람보다 나을 것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성경말씀도 남에 대하여 지나치게 말하는 것을 권하지 않고 있다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7:1). 다행스러운 것은 사람마다 이러한 자각의 정도가 다르다는 점이다. 만약 모든 사람이 다 자신을 악인으로 생각하고 자책하고 있다면 이 세상에는 지도자도 없고 남을 선도하며 가르칠 사람이 없을 것이다. 어떠한 사람들은 자신이 악한 것을 알지 못하고 있거나 알면서도 자책하는 마음이 약하기 때문에 남이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일을 할 수도 있다. 이러한 점에서 본다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사람들을 의로운 체 하는 죄인죄인인 체 하는 의인으로 분류할 수 있을 것이다. 만일 우리가 우리 자신들을 의롭게 여겨진 죄인들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기독교인들의 단체나 기관들이 점점 더 나아지며 기독교인들 사이에서 분쟁은 줄어들 것이다.

     

    그러나 악인에 대하여 침묵하는 죄인인 체 하는 의인이 있다고 생각할 때 그 침묵은 완전한 침묵일까? 만약 그러한 침묵이 완전하였다면 성경에는 악인에 대하여 불평하는 기도가 없었을런지도 모른다. 성경에 그러한 기도가 있다는 것은 그러한 사람들이 하나님께 대해서는 침묵을 지킬 수 없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나 역시 마찬가지이다. 내 주변에서 여러 종류의 악인들을 보면서 침묵해야 하는 이유는 나 자신이 죄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도 가운데서는 어떠한 사람들에 대하여는 침묵하지 못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나는 하나님에게 이러한 사람들이 계속하여 악을 범하고 있는 것을 막아주시기를 기도한다. 기도할 뿐 아니라 왜 하나님께서 이러한 사람들을 벌하시지 않는지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기독교인 답지 않은 태도를 가지고 있음을 또한 발견한다. 물론 이러한 순간에는 나 자신이 어떠한 사람인지를 망각하면서.

     

    구약성경에는 악인에 대하여 불평하는 기도가 많이 포함되어 있다. 시편은 특히 대표적으로 이러한 기도를 많이 담고 있는 책이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가 가장 아름다운 시라고 생각하는 23편에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하는 구절이 악인에 대한 불평이나 간접적인 보복을 암시한다고 본다면 거의 모든 시 속에 이러한 사상이 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시편외에도 선지서나 지혜서 속에는 이러한 기도들이 많이 있다. 이러한 사상이 강하게 담겨진 기도의 몇 예를 든다면 시 37, 73, 예레미야 12, 하박국 1, 욥기 21, 또는 요나서 4장을 들 수 있다. 이번 호에서 선택한 욥기 21장에는 욥이 악인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것을 불평하는 것을 보게된다:

    악인은 오래살며 세력이 강함

    그의 후손이 번성하며 성공함

    그의 집이 평안하며 하나님의 벌이 없음

    그의 짐승들까지도 낙태함이 없이 번성함

    그의 죽음 후에는 파수군이 그의 무덤을 지킴.

     

    욥의 불평이 끔찍하다는 것을 이해하려 한다면 다음과 같은 질문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욥은 악인에게 어떠한 삶이 마땅하다고 생각하고 있는가?” 이에 대한 답변은 위에 열거된 사항들이 반대로 실현되어지는 것일 것이다. 어떻한 악인이라 할지라도 그에게 이러한 것들이 발생되기를 원한다는 것은 참으로 무서운 생각이다. 그러면 성경에서 여러 사람들이 악인에 대하여 하나님에게 불평하는 동기는 무엇일까? 그들은 악인들이 벌 받기를 즐기는 잔인한 사람들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악인들의 성공을 질투하기 때문일까? 이러한 이유들 보다는 하나님의 공의에 대한 실망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실망이 그들의 신앙의 기본을 흔들리게 하고 하나님에게 질문하게 하며 불평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시편 저자들과, 예레미야, 하박국, 요나와 같은 선지자들이 하나님에게 불평한 것은 악인들에게 나타나는 현실이 그들이 기대하는 것과 상반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발생될 수 있는 현상이다. 이러한 마음을 극복하는 길은 죄인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깨달으며 나 역시 그러한 사랑을 받은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일 것이다.

     

    나는 이 글을 맺으며 다음과 같은 생각을 독자들과 나누고 싶다. 정상적인 기독교인은 연륜이 더할수록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깊어지며 생활이 변화된다고 본다. 이러한 지식은 성경적인 지식이 아니고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적으로 알기를 원하는 경험이다. 만약 세월이 갈수록 기독교인의 생활이 변화되지 않거나 심지어 퇴보된다면 이것은 참으로 심각한 영적문제이다. 만일 신체적으로 연륜이 많아지는 기독교인이 계속적으로 세상을 사랑하며 법을 무시하며 물질에 대한 욕심이 가득 찬 마음으로 살아간다면 이것은 심각하게 재고해야 될 기독교인의 삶이다.

     

     

     

     

    시편정해 85

    시편 73

                                                                                                 최선호 목사 (메시야교회 담임/ 시편정해 저자)

    73-83편은 아삽이 지었거나 편집한 시들이다. 이 시(73)는 구약 성도들에게 의인의 고난과 악인의 형통함 사이에서 번민하는 자신을 나타내다가 결국 하나님의 공의로 악인에게 심판이 내림을 보고 하나님만을 의뢰하는 믿음을 보여준다.

    주제: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소재: 의인의 고난 악인의 형통함.

    배경: 대체적으로 B.C. 587년 유다 백성들이 바벨론으로 잡혀간 뒤에 또는 B.C. 538년 그들이 포로 생활을 끝내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 다음에 지어져 많이 불리던 노래.

    수사: 은유, 열거, 반복, 활유, 인용, 설의, 비교, 도치, 대조, 대유, 직유.

    경향: 개인 신뢰시, 지혜시, 교훈, 고뇌(심리 갈등), 의지(오직 하나님).

    구성: 4. (13), (49), (1017), (1828).

    작자: 아삽(A psalm of Asaph).

    이 시의 지은이가 표제에 있는 대로 아삽인지 다윗이 지어서 성전 예배 때에 부르도록 그에게 맡겼는지 분명하지 않다. 대 하29:30에는 베레가의 아들이며 또 자기의 아들들과 함께 예배 시에 성전에서 노래하는 대로 임명된(대상15:19;25:1,2;12:46) 아삽이라는 이름을 가진 선견자가 여러 편의 시를 지었다는 사실이 암시되어 있다. 따라서 그의 이름이 나오는 12편의 시 중 대부분을 그가 지은 것임이 분명하다. 이삽은 다윗 당시에 찬양대장이었다(대상16:5).

    핵심어: 하나님.

     

    (): 악인의 형통에 대한 질시

    1 하나님이 참으로 이스라엘 중 마음이 정결한 자에게 선을 행하시나

    2 나는 거의 실족할 뻔하였고 내 걸음이 미끄러질 뻔하였으니

    3 이는 내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시하였음이로다


    1: 하나님은 이스라엘 마음이 정결한 자에게 선을 행하신다”. “마음이 정결한 자는 참 이스라엘 경건한 자이다(5:8;9:67). 진실로 하나님을 섬기려고 최선을 다 하는 사람을 말한다. “선을 행하시나선을 행하신다. 그러나(but)’이므로 2절과 역접관계(逆接關係)이다.

    2-3: 오히려 악인이 잘되어 가는 상황이라는 판단 아래 하나님이 악인들에게 복을 주신다는 영적 갈등을 겪고 있다. 악인은 하나님보다 세상 것을 더 사랑하기 때문에 번영함이 육신의 눈에 보인다.

    2절은 영적 갈등을 자신의 행동을 통한 직접묘사로 긴박감을 더한다. 오히려 악인이 잘 살다가 잘 죽는 꼴을 본 시인은 신앙적 갈등과 위기에 처하게 됨으로 고민 중에 나는 거의 실족할 뻔하였고 내 걸음이 미끄러질 뻔하였으니라고 자신의 심경을 토로하고 있다. “실족할 뻔하였고미끄러질 뻔하였으니는 동의어의 반복이다.

    악인은 하나님을 전혀 모르는 이방인이 아니고 외식하는 자를 말한다. 1절의 마음이 정결한 자3절의 악인과는 대조를 이룬다.

     

    (): 악인의 번영과 죄행

    4 저희는 죽는 때에도 고통이 없고 그 힘이 건강하며

    5 타인과 같은 고난이 없고 타인과 같은 재앙도 없나니

    6 그러므로 교만이 저희 목걸이요 강포가 저희의 입는 옷이며

    7 살짐으로 저희 눈이 솟아나며 저희 소득은 마음의 소원보다 지나며

    8 저희는 능욕하며 악하게 압제하여 말하며 거만히 말하며

    9 저희 입은 하늘에 두고 저희 혀는 땅에 두루 다니도다


    4-5: 악인의 형통이 열거반복으로 강조되었다. 악인은 영적으로 죽은 자(21:13)이기에 이런 상황을 깨닫지 못한 시인에게 비춰진 심리적 영적 갈등이 부각되어 있다.

    6-9: 악인의 못된 상황이 열거반복풍유적(諷喩的: allegory) 수사로 강조되어 있다. “교만목걸이처럼 항상 목에 걸고 다니고 우악스런 포악(강포)을 옷으로 입고 다니는 악인들이 6절에 묘사되어 있다. “강포는 사회의 불의가 의인을 괴롭히기에 발생하는 괴로운 상황인데, 본문에서는 암시 정도로 끝내고 더 이상 구체적인 내용을 말하지 않고 있다. 7절에 살짐은 형용사 살지다의 명사형이다(‘살찌다는 동사). 살이 진 상태와 같이 풍족해진 악인들은 눈이 솟아나도록눈을 크게 뜨는 교만이 팽배해진다. 이와 같이 교만한 자들에게는 승리는커녕 수치만 따를 뿐이다(3:17). “저희 소득은 마음의 소원보다 지나며는 영적 소원보다 물질적 소득이 많다는 비교강조이다(7). “말하며”, “말하며가 반복강조되어 있으므로 말로 능욕하고 악하게 압제함이 매우 심하다(8). “저희 입은 하늘에 두고최고의 교만을 풍자(諷刺)한 표현이다. “저희 혀는 땅에 두루 다니도다는 거짓과 악한 꾀로 상처를 입히는 죄행을 꼬집는다(9). 9절 문장은 대등절(對等節)을 가진 중문(重文: 겹월)으로 가 대조되고 하늘이 대조되고 두고다니도다가 대조를 이루어 영탄적으로 의미를 강조한다.

     

    (): 악인들의 번영에 대한 갈등을 예배를 통해 해소

    10 그러므로 그 백성이 이리로 돌아와서 잔에 가득한 물을 다 마시며

    11 말하기를 하나님이 어찌 알랴 지극히 높은 자에게 지식이 있으랴 하도다

    12 볼지어다 이들은 악인이라 항상 평안하고 재물은 더 하도다

    13 내가 내 마음을 정히 하며 내 손을 씻어 무죄하다 한 것이 실로 헛되도다

    14 나는 종일 재앙을 당하며 아침마다 징책을 보았도다

    15 내가 만일 스스로 이르기를 내가 이렇게 말하리라 하였더면 주의 아들들의 시대를 대하여 궤휼을 행하였으리이다

    16 내가 어찌면 이를 알까 하여 생각한즉 내게 심히 곤란하더니

    17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저희 결국을 내가 깨달았나이다


    10: “백성(이스라엘)이 이리(악인이 있는 곳)로 돌아와서 잔에 가득한 물을 다 마시며잔에 가득한 물은 악인들의 죄행으로 인한 성도들의 환난을 상징하는 은유법의 보조관념이다(80:5).

    11: “하나님이 어찌 알랴 지극히 높은 자에게 지식이 있으랴는 인용법과 설의법의 복합적용이다. “잔에 가득한 물을 마신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을 모르고 하는 말(하나님은 모른다, 지극히 높은 자에게 지식이 없다)이다. 이는 어리석은 자의 교만이다.

    12: 도치(倒置)된 문장이다. 악인의 번영을 강조하고, ‘보라는 명령문이다.

    13: “내 마음내 손이 대조를 이루어 영적’(정신) ‘외적’(행위) 상황을 돋보이고 있다. 빌라도도 무의미하게 손을 씻었다. 헛일이다(27:24).

    14: 5절과 같이 악인에게는 번영이 있고 재난을 당하지 않는 반면에 나(의인의 표상)는 재난 고통을 받고 징책을 본다.

    15: “주의 아들들의 시대는 하나님의 백성 시대로써 경건한 삶을 신조로 살아가는 자들의 때를 말한다. 그 시대의 주인이 주의 아들들이다.

    16-17: 지금껏 풀지 못한 근심 갈등이 성소에 들어갈 때 해소가 되었다 악인의 번영은 순간적이라는 것(14:12). 17절에서 비로소 악인의 최후가 어떤가를 알게된다.

     

    (): 오직 하나님만이 나의 복

    18 주께서 참으로 저희를 미끄러운 곳에 두시며 파멸에 던지시니

    19 저희가 어찌 그리 졸지에 황폐되었는가 놀람으로 전멸하였나이다

    20 주여 사람이 깬 후에는 꿈을 무시함같이 주께서 깨신 후에 저희 형상을 멸시하시리이다

    21 내 마음이 산란하며 내 심장이 찔렸나이다

    22 내가 이같이 우매 무지하니 주의 앞에 짐승이오나

    23 내가 항상 주와 함께 하니 주께서 내 오른손을 붙드셨나이다

    24 주의 교훈으로 나를 인도하시고 후에는 영광으로 나를 영접하시리니

    25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밖에 나의 사모할 자 없나이다

    26 내 육체와 마음은 쇠잔하나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시요 영원한 분깃이시라

    27 대저 주를 멀리하는 자는 망하리니 음녀 같이 주를 떠난 자를 주께서 다 멸하셨나이다

    28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사를 전파하리이다


    18-19: 17절의 내가 깨달았나이다깨달음이 여기 나타나 있다. 즉 악인의 번영은 순간일 뿐이라는 것. “미끄러운 곳에서는 바로 설 수 없는 곳이므로 파멸과 동의어이다.

    20: “주여는 영탄적 호격(呼格)이지만 의미상 는 이란 주격(主格)이다. 직유법을 사용하여 꿈을 꾸고 나서 멸시하듯이(기억조차 하기 어렵듯이) 인간의 형상을 멸시하신다(39:6).

    21: “심장영혼의 대유(代喩)이다. ‘내 슬픔의 충격이 극히 컸음에 대한 자극적 강조이다.

    22-23: “짐승은 우매 무지한 인간을 나타낸 은유법의 보조관념이다(22). 그러나 짐승인 내가 주와 함께 하니구원에 이른다(“주께서 내 오른손을 붙드셨나이다”: ‘인간이 잡은 하나님의 손은 놓칠 수 있으나 하나님께서 잡으신 성도의 손은 결코 놓치지 않으신다’).

    24: 현재에서 미래까지 주와 함께 기쁨으로 동행하는 소망(8:18)이 나타나 있다.

    25: “하늘에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는 유일신 사상이 설의법(設疑法)으로 강조되어 있다. 영적인 소망은 하늘에나 땅에나 오직 주님뿐임을 강조한 문장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영혼은 다윗이 증거한 대로 하나님이 없이는 만족될 수 없다.

    26: “반석분깃은 여호와를 이해하는 상징적 은유의 보조관념(補助觀念)이다(119:57).

    27: ‘주를 떠난 자와 악인의 최후에 따른 멸망의 선포이다(20:6;106:39). “음녀 같이 주를 떠난 자하나님을 버린 자를 나타낸 직유법의 보조관념(補助觀念)이다.

    28: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는 독립된 서술절(敍述節)로도 가능하고, 한편 복이기 때문에로 의미를 연결하여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사를 전파하리이다를 주절(主節)로 한 종속절(從屬節)로도 이해가 가능하다.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주 안에서피난처의 개념을 통해 구체화시킨 표현이다. 26-28절에서 앞으로는 모든 희망을 오직 하나님께만 향하고 반석이시며 분깃이고 피난처 되시는 하나님을 가까이 의지함만이 참다운 복으로 여기고 하나님의 하신 일들을 만방에 알리려 한다.

     

     

     

     

     

    새 번역 사도신경 해설 (12)

    Lecture on The Apostles' Creed

     

                                                                                                                              이종윤 목사 (서울교회 담임)

    . 유일하신 아들

     

    1.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칭호의 일반적 이해

     

    일반적으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은

    ) 하나님을 섬기는 하나님의 백성을 지칭하는 의미로 사용된다. 이스라엘 전체를 내 아들이라 부르셨고(11:1, 4:22) 그에 속하는 개개인들에 대해서 하나님의 아들들(자녀)라 했다.(14:1, 1:10, 9:4) 신약에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백성이 된 자들에게 하나님의 아들들 또는 하나님의 자녀들이라 했다.

     

    )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 가운데서 왕으로 임직된 이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부른 일이 있다.(삼하7:14) 2:7에서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날 너를 낳 았도다 함으로 직임적인 아들됨(official sonship)을 보여준다. 메시야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부를 때 이 같은 직임적인 아들됨의 의미에서 그렇게 부를 수도 있다.

     

    ) 지상적 존재가 아닌 천상적 존재들 일반을 지칭할 때 하나님의 아들들이라 했다.(1:6, 2:1, 38:7, 3:25) 권능있는 자들(29:1, 89:6)도 천상적 존재를 의미한다.

     

    ) 특히 헬라 사람들은 하나님의 아들을 기적을 만드는 자(Miracle maker)로 생각했다. 예수님이 받으신 시험에서 처음 두 가지(, 성전 첨탑뛰어내림)는 기적을 요구하는 것으로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면이 나온다.

     

    2.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의 뜻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내 아버지라고 부르시고 자신을 아들이라 하실 때 그저 언약적 아들됨이나 직임적 아들됨 또는 천상적 존재로서의 아들됨이나 기적을 만드는 자 정도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하셨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였으되 믿지 아니하는 도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하는 일들이 나를 증거하는 것이거늘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 도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10:25-30) ‘내가 행하거든 나를 믿지 아니할지라도 그 일은 믿으라 그러면 너희가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음을 깨달아 알리라 하시니’(10:38) 이 말씀 중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는 말씀은 그저 그 둘이 같은 것을 의도하거나 생각하는 바가 같다는 것을 즉 예수님께서는 성부와 같은 것을 원하신다는 것을 의미한 것이 아니다. 이는 그 둘의 기능적 일치성(functional unity)을 표현하는 말이 아니다. 성부와 성자 그 둘이 한 존재라는 것이 아니라(그렇게 되면 결국 양태론적 결론이 날 것이므로) 단지 그들의 본질이 같다는 것을 단언한 것이다.

    성부와 성자 사이의 온전한 하나 됨에 대한 주장, 그 둘의 배타적인 관계에 대한 주장은 요한복음에서뿐 아니라 마태복음서에도 있다.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11:27)

    여기에 오직 그 분만이 내 아버지라고 하실 수 있는 독특한 아들이 있다는 자의식이 표현되어 있는 것이다. 그 아버지와 그 아들은 서로에게 대해서 아주 독특한 배타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도 말씀하신다. 이런 식의 아들은 이 세상에 이 한 분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는 심지어 자신을 하나님과 동일시하면서 말씀한다. 이 세상에 그런 식으로 자신을 주장할 수 있는 이는 예수님밖에는 다른 이가 없다.

    당시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비난하였다. ‘유대인들이 대답하되 선한 일로 말미암아 우리가 너를 돌로 치려는 것이 아니라 신성모독으로 인함이니 네가 사람이 되어 자칭 하나님이라 함이로라’(10:33) 유대인의 이런 반응은 예수님의 주장이 그와 아버지의 뜻이 하나라는 정도가 아니고 결국 자신이 하나님이심을 주장한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그가 단순히 언약 백성의 한부분이라든지, 큰 직임 심지어 메시야로서 일을 감당할 분으로 사용된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하나님이심을 의식하셔서 성부에 대해 성자의 관계에 계신 분이심을 드러내시며 사용하신 귀하고 독특한 계시적인 말이다. 이런 의미의 하나님의 아들이란 삼위 일체적 아들됨이라 할 수 있다.

     

     

     

     

    목양칼럼 43

                                                            부모의 네 가지 영향력

                                                                                                             차현회 목사 (웨슬리세계선교회 회장)

    영향(影響) - 그림자가 형상을 좇고, 울림이 소리 소리 응함과 같이, 부모의 영향은 자녀들에게 큰 작용과 결과가 자못 큰 것을 부인 할 수 없다.


    첫째 - 개인생활이 주는 영향 -

    1) Richard Nieburn의 책임적 자아(責任的自我 Responsible self)에서 모든 생활의 표준을 자신에게 맞추어 세워 놓고 사는 사람은 오로비 이해(利害)를 물적으로 자녀와 가정과 사회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던지 아랑곳 없이 제 멋대로 생활 하고 때로는 폭력과 사기 까지도 동원 한다. 마치 나치 독재와도 같다.

    2) 생활 규범을 법에 두고 사는 사람은 합리적인 인간으로, 정당성을 찾으며 과거에 얽매이기 쉽고, 현재 일어나고 있는 사건들을 무시 또는 무관심 할 뿐 아니라, 다분히 폐쇄적인 생활을 도모하며 산다.

    3) 책임감이 강할 뿐아니라 책임 있는 삶을 사는 사람 : 가정의 부모로서, 교회의 지체로서 사회의 이웃과 국 가의 국민으로 - 꼭 지켜야 할 책임에서 이탈하지 않는 고질적인 사람들이다.


    둘째 - “의 영향 -

    무심(無心)히 아무 악의(惡意)없이한 말 한마디가, 마음의 상처가 되고 불쾌감을 주고 있다. 근거 없는 말, 짐작 하는 말이 불신, 불화, 불만을 초래하고 있다.


    셋째 - “가정생활을 통하여 주는 영향 -

    미국의 교육학자 H.Bushnel 은 말하기를-교회와 가정은 형제나 친척과 같은 관계라고 지적했다. 가정의 장식 품은 자녀를 탐심과 허영으로 이끌고 가정의 서대(書齋)는 자녀를 지혜와 판단력을 기르면서 실력있는 재목으 로 쓰여지게 된다. 더욱이 기도실은 영원한 셰계에 대한 가치와 삶의 목적을 천명시키고도 남은이 있게 된다.


    넷째 - “사랑의 영향력-

    에로스 (남녀 이성간의 사랑, 육체적 사랑)

    필레아 (지적사랑, 우정의 사랑, 가족사랑)

    스톨게 (부모의 자녀사랑)

    필란드로피아 (자선, 구제, 동정의 사랑)

    아카페 (사람에게 없는 하나님의 사랑, 자발적, 희생적, 능동적 사랑)

    이 다섯 가지의 사랑이 균형을 이루어 자녀들의 성장에 큰 표본을 셰워 나가애 하겠다

     

     

     

     

    신앙산책(12)

                                              하나님의 본래적 영광 (1)

                                                                               심 영견 목사 (본지 편집위원)

    거리로 지금 나가서 열명을 붙들고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여러가지 대답을 할 것이다. , 사랑, 결혼, 성생활, 자유, 안전, 지위, 즐김, 평안, 행복 등등일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관점으로 보면 한 가지 대답 밖에 없다. 그것은 바로 웨스트민스터 소요리 문답의 제 일 질문에 대한 해답이다. 인간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다. 시편 16:8에서 다윗은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라고 하고 있다. 그 뜻은 하나님께 영광을 드림이다. 이 말은 내가 하는 모든 일과 나의 관심이 주께 드려지고 있고, 내가 하는 모든 것과 이뤄내는 모든 일의 초점이 하나님께 있다. 그 모든 것이 그의 영광과 존귀와 그의 뜻을 위한 것이다. 그렇게 하고 난 후의 결과가 9절에 나타나 있는데, 이러므로 내 마음이 기쁘고 내 영광도 즐거워하며라고 했다.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 안에서 큰 기쁨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윗의 목표는 항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았고 결과적으로는 하나님을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삶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 것이 다윗 혼자만의 경험이겠는가? 모든 사람이 가지게 되는 즐거움의 비밀이 아니겠는가? 영적인 성숙이란 그 분의 위엄(majesty)에 사로잡혀서 자신을 포기하는데 까지 그 분의 인격에 몰두되어 파묻히는 데서 온다.

    그 분의 위엄을 어떻게 알아 모실 수 있는가? 그것은 인간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자기영광 가운데 계시는 줄 아는 데 있다. 이것을 하나님의 본래적 영광(Gods Intrinsic Glory)이라 하고 이 영광은 그의 모든 성품의 나타나심이자 그 성품의 조화이며 총화이다. 우리는 본래 가지신 그 영광을 그에게 줄 수도 없고 감할 수도 없는 것은 그분 자체가 영광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7:2).

    인간의 영광은 하나님의 내재적 영광과는 사뭇 달라서 자기 밖에서 들어올 때만 영광이다. 즉 다른 사람들이 칭찬하며 치켜줄 때만 영광이며 영광의 옷을 벗을 때는 거지와 다름 없다. 그러면 그의 영광이 어떤 때에 나타나는가? 주의 능력이 나타날 때이다. 예수님께서 나사로를 살릴 때 무덤의 돌을 올겨 놓으라고 명했을 때 마르다는 주님의 명령에 거역을 했다. 그때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 하였느냐이다. 마찬가지로 이와 동일하신 능력은 우주를 창조하실 때도 나타내셨다. 그의 영광은 자신의 한 부분으로서 아무도 그에게 줄 수 없는 그의 본성이다. 그리하여 사 48:11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주지 아니 하리라하셨다. 그런데 성도들도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수 있는데 모세가 시내산에서 내려 올 때의 경우가 그러하다(34:30-35). 그런데 그보다 더한 은혜는 모든 성도들도 하나님의 영광을 반사할 수있다는 것이다(고후 3:18). 그러나 하나님은 자기를 떠나 아무에게도 자기영광을 주실 수 없는 연고로 하나님께서 성도들 속에 거하실 때 만 가능하다. 그러나 전술하였듯이 그 영광은 결코 우리의 것이 될 수 없다.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를 통해 반사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다음 호에서는 시대별로 나타난 하나님 자신의 영광을 보기

     

     

     

     

     

    미국교회 역사 (40)

                                                                                                                            이 정남 목사 (본지 편집위원)

    흑인 노예와 흑인 교회

    1850년대, 남북전쟁 전후, 흑인교회의 하나님 개념은 복종하고 겸손하며 순종하라는 것이었다. “내세의 강조와 보상그리고 수도하는 사람들 같이 현세에서 자신의 위치를 향상하기 위하여서는 어떤 노력도 하지 않는 것이었다. 남북 전쟁 전, 특히 남부 지역 흑인들에게 신앙은 이 지상의 삶에서는 고난받고 억압받지만 내세에서는 피곤하고 지친 심령들은 편히 쉴 것이며 불의의 피해자들은 보상을 받을 것이라 는 것이었다. 이는 남북전쟁 전 흑인교회를 향한 메시지였다. 특히 1830년대 남부 지역 노예 소유주들은 그들은 신앙이 깊을수록 더욱 더 값지다고 주장하였다. 흑인 노예들에게 흑인 노예는 백인을 때려서는 안된다. 하나님이 노예로 만드셨다. 매를 맞을 때에도 때리는 백인들에게는 잘못이 없다고 주장하면서 노예들이 신앙 안에서 피난처를 찾게 하려는 경향도 있었다. 돌아보면 이런 주장은 실질적으로 틀린 주장은 아니었던 것 같이 인식되었다. 흑인 노예들은 이런 주장을 받아들였다. 엄격하게 볼 때 그들에게는 그런 해석 외에 다른 길이 없었기 때문이다. 노예였던 Frederick Douglass나는 남부에서 선하고 믿음이 좋은 흑인들을 보았다. 그들은 하나님이 자신들에게 노예로서 순종하고 노예의 사슬을 온순하고 겸손함을 나타내는 표시로 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져있다고 주장하였다.

    흑인노예, 노예 상태의 이스라엘, 모세, 출애굽 그리고 Promised Land

    반면 남부 지역 백인들은 흑인들이 노예 해방 운동을 한다면 이는 흑인교회와 깊은 협력이 있을 것이라는 우려를 가지고 있었다. 이미 1800년에 South Carolina 의회는 흑인들의 교회집회를 제한하기 시작하였다. “흑인들은 백인이 참여하고 있더라도 해가 진 후부터 해가 뜨기 전에는 종교적인 집회를 금지하였다”. 시장에게는 그런 집회를 해산시킬 수 있는 권한까지 부여하였다. 이는 교회 집회가 감독할 수 없는 시간에 열린다면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VirginiaHenrico County에서 그런 사건이 일어났다. 노예였던 GabrielMartin 형제는 저녁시간에 있었던 노예가 아닌 흑인들의 예배에서 흑인 반란을 계획하였다. MartinGabriel 형제는 설교를 통해서 이스라엘 민족은 자신들을 억압하는 독재자에 반기를 들었고 성공하였던 예를 들면서 예나 지금이나 하나님은 팔을 펴 그들을 구원할 것이며 100 명에게 힘을 주어 1.000 명을 무너뜨릴 것이라고 설교하였다. Henrico County의 흑인들은 새 이스라엘 사람들이 되었고 Gabriel은 그들의 모세가 되었다. 모세의 인도로 노예 상태에서 해방된 이스라엘 민족과 노예 상태의 흑인노예를 동일시하려는 사상은 강하게 어필하였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자신의 팔을 펴서 흑인 노예들을 건질 것이라는 사상은 흑인 교회를 지배하였다.

    Nat Turner, Harriet Tubman, W.E.B Dubois 등 흑인교회 리더들은 깊은 신앙체험을 체험하고 열심 있는 기도와 금식 등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자신들에게 억압받은 흑인들을 구원하라는 특별한 하나님의 메시지를 받았다고 고백한다. Turner나는 하늘로부터 오는 음성을 들었다. 마귀는 풀려났고 성령이 임하여 그리스도는 인간의 죄를 사하시려고 죄 값을 대신 지었다. 나는 그 짐을 지고 풀려난 마귀와 싸워야한다. 처음 난 자는 마지막이 될 것이며 나중 난 자가 처음이 되는 때가 찼다고 고백하였다. Harriet Tubman은 히브리 노예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성장하여 이룰 수 없어 보이는 꿈을 가지고있었다. Turner와 같이 Vision을 보고 자유를 위하여 고난과 싸움이 있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Tubman은 하나님과 함께 기도하면서 하나님은 흑인들에게 자유를 주시기를 원하신다고 확신하였다. Tubman은 자유를 위하여 필요하다면 죽을 각오가 되어있고 바로 이것은 자신의 신앙의 실천이라고 고백하였다. 이런 생각은 흑인 노예 해방 운동에 앞장섰던 흑인교회 리더들의 신앙이었다. 그들은 죽은 후의 천국을 기다릴 수가 없었다. 모세는 그들에게 영웅이었다. “! 가나안 땅,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 나는 가나안 땅을 향하여 달려가고 있다” (O! Canaan, Sweet Canaan, I am bound for the land of Canaan)는 그들의 행진곡이었다. 라인홀드 니버는 종교는 양면적인 기능을 가지고 있다. 서로 다른 시기에 억압받은 사람들의 예를 들면서 종교개혁 시대에 급진적인 개혁파들은 사회개혁을 위하여 메시아 시대의 임하심을 자신들의 전유물로 활용하였고 보수적인 쪽에서는 사회에서 일어나는 불의를 도래할 시대의 소망으로 받아들이도록 사용하였다고 주장하였다.


    1850년대의 미국

    인구: 23,191,876, 1850년대 전체 이민 숫자는 369,191,980. Fillmore 대통령은 Mormon 리더인 Brigham YoungUtah 지역 지사로 임명. 1850New York에 노숙자는 18,456. 1856년 이들을 위한 숙소 건축. 1857년에는 Boston에 노숙자를 위한 병원인 Channing Home 설립. Wyoming 지역의 Fort Laramie를 통과하여 California로 가는 Gold Rush는 계속. Oregon에서도 금광이 발견, Gold Rush는 북쪽으로 이동하였다. 1851Maine 주에서 금주를 결의, 주류 제조 금지. 1844년에 영국에서 시작된 YMCA가 미국에서는 1851년 처음으로 Boston에 설립. 1850년대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소설인 노예 문제를 주제로 한 Harriet Beecher Stowe"Uncle Tom's Cabin" 발간, 1852년 최초로 유대인 병원이 New York에 설립, 후에 Mt. Sinai Hospital로 이름을 변경. 1853년 일본과 통상 조약 체결. 일본이 처음으로 서구와 문호 개방 시작. 1855Oakland에 회중교회와 장로교회가 협력하여 College of California 설립. 1857Colorado 지역 Pike's Peak, 1858Denver 지역 Cherry Creek에서 금광 발견. Denver는 급격한 인구 증가로 2년만에 극장, 도서관, 주민 토론회당 등장. 1859년 펜실바니아주, Titusville에서 유전 발견으로 미국 경제의 전환기가 되었다. Oil은 중요한 수출품이 되었으며 고래 기름과 촛불대신 등유의 등장. MIT 대학 설립.

     

     

     

     

     

    김정복 목사의 기도행전(2)

                                                    모로코 왕국 (1)

                                                                                                                                      김정복  목사/ 순회선교사

    서북아프리카에 위치하고 있는 모로코는 동쪽은 알제리, 남쪽은 모리카니아와 접경하며, 북쪽은 지중해, 서쪽은 대서양으로 면적은 710,850 Km 평방으로 남한의 약7배이다. 수도는 라바트(Rabat)이며 카사브랑카 (Casablanca)가 널리 알려져 있는 도시다.

    3170만명 인구중 아랍인이 60%를 차지하며 그 다음이 베르베르인(36%)이고 유태인과 흑인 등이 조금있다

    헌법에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어있으나 모로코인에 대한 타종교 포교 행위는 금지되어 있다

    다만 외국인을 위하여 전국에 카톨릭 성당 10, 기독교 교회 5, 유대교 회관 10개 등이 있다. 또 이곳 국민의 96%가 모슬렘을 믿고 있으며 국왕이 철저한 모슬렘 신봉자이며 국교가 모슬렘이기도 하다.20081015, 서북 아프리카 모로코 왕국의 라바트 공항에 비행기가 무사히 안착했다. 지구의 반 이상을 비행한 긴 여행이었다. LAX에서 프랑스 파리까지 비행시간 10시간 30, 공항에서 기다리는 시간 4시간 20, 다시 파리에서 모로코 라바트까지 비행시간 2시간 50. 정확히 17시간 만에 모로코 라바트 공항에 도착했다, 오래간 만에 땅을 밟아본다. 어제 저녁은 미국에서 먹었고, 점심은 유럽 파리에서 먹었고, 저녁은 아프리카 모로코 왕국에서 먹었다. 지구가 갑자기 작아진 것 같다.공항 밖으로 나오니 라바트한인교회(허영희 목사) 집사님이 반갑게 맞아준다. 허 선교사는 수요 예배를 인도하고 계시기 때문에 자기가 대신 나왔다고 한다. 어제까지 비가 많이 왔는데 오늘부터 날씨가 개어서 시원해졌다며, 우기가 시작되었다고 한다.차창 밖으로 보이는 아프리카 모로코 라바트의 시내를 보니 지난날 아프리카 선교의 기억이 머리에 떠  오른다. 케냐의 나이로비, 탄자니아의 아루샤, 에티오피아의 아디스아바바, 세네갈의 다카, 감비아의 반쥴, 이집트의 카이로 등 나라와 민족과 도시의 크기는 각각 다르지만 아프리카의 특색있는 환경은 거의 비슷한 것 같다.내가 처음으로 WMC 단기 선교팀 6명을 인솔하고 아프리카 케냐 나이로비에 발을 디딘 것은 19867월이었다. 벌써 23년 전이다. 그후 거의 매년 케냐, 탄자니아, 그리고감비아, 세네갈, 에티오피아, 이집트 등 6나라에 모두 13번 아프리카를 선교 방문했고 이제 7번째로 모로코왕국에서 기도부흥회를 인도하게 되니 감격하지 않을 수 없다.교회 건물은 오래된 유럽식 예배당이었다. 교회 안으로 들어서니 허영희 목사님이 말씀을 전하고 있다.

    많지 않은 성도들이지만 목사님의 말씀에 경청하고 있는 성도들의 뒷모습이 너무나 아름답다. 나는 조용히 뒷 자리에서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기도를 드리고 내일 새벽부터 시작되는 부흥사경회를 위하여 간절히 기도했다. 예배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니 밤이 깊었다. 내일 새벽부터 영적 전쟁이 시작되는 것이다. 욕실에서 큰 타올을 한 장 꺼내 의자 앞 바닥에 깔았다. 그리고 타올 위에 무릎을 꿇고 앉아 의자를 두 손으로 꽉 잡았다. 서북아프리카 모로코 이슬람왕국, 이곳 라바트에서 5일간 영적전쟁이 시작되는 첫날 밤이다.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날 밤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간절히 기도했듯이, 한참 기도한 후에 잠이 들었다.새벽430, 교회를 향해 출발하려고 하는데, “~하는 모슬렘의 새벽기도 아잔소리가 스피카를 통하여 들려 온다. 하루가 시작되는 새벽 시간부터 모슬렘과의 영적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새벽기도의 중요성을 다시 새롭게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김정복 목사의 순회선교사역을 위하여 특별 기도를 부탁합니다

    - 아르헨티나 WMC 기도학교 기도세미나 (2009/ 5/13-24) -

     

    5월 아르헨티나 WMC 기도학교 기도세미나 일정표

    도착일시 : Delta Air 0101 : 513() AM 7:45

    출발일시 : Delta Air 0110 : 525() PM 8:20

    513-1419-22Loma de zamora 현지인 교회

    515-1619-22Villa Celina 현지인 교회

    517-1919-22Gonzales Catan 현지인 교회

    520-2119-22Laferrere 현지인 교회

    522-2419-22Florecia Varela 현지인 교회

     

    17일 과 24일 주일 낮11시 주일 예배는 한인교회 설교 (예정)

    시간표는 변경될 수도 있읍니다.

     

    기도제목 :

    1. 김정복 목사/ 순회선교사의 성령 충만하고 말씀 충만한 강의를 위하여

    2. 장시간 여행에 피로하지 않는 건강과 체력과 안전을 위하여

    3. 하나님 아버지의 충성스러운 종으로서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4. 김정복 목사의 가정과 모든 가족들의 평강을 위하여

    5. 김정복 목사의 기도세미나 사역을 기도와 물질로 돕고있는 모든 후원자들을 위하여

     

     

     

    말의 응답

    (16:1-3)

    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로서 나느니라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깨끗하여도

    여호와는

    심령을 감찰하시느니라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너의 경영하는 것이 이루리라

댓글 0 ...

http://wmcprayer.org/index.php?mid=wmc_monthly_prayer&document_srl=1164
번호
제목
닉네임
48 WMCAdmin 3021 2012.09.09
47 WMCAdmin 2822 2012.09.09
46 WMCAdmin 3121 2012.09.09
45 WMC Admin 4311 2012.08.28
44 WMC Admin 2994 2012.08.25
43 WMC Admin 2914 2012.08.22
42 WMC Admin 3005 2012.08.22
41 WMC Admin 2925 2012.08.22
40 WMCAdmin 3216 2012.08.22
39 WMCAdmin 2826 2012.08.21
38 WMC Admin 3162 2012.08.16
37 WMC Admin 2895 2012.08.16
WMC Admin 2945 2012.08.16
35 WMC Admin 3164 2012.08.16
34 WMC Admin 3080 2012.08.15
33 WMC Admin 3221 2012.08.11
32 WMC Admin 11519 2012.08.11
31 WMC Admin 3401 2012.08.10
30 WMC Admin 3795 2012.08.10
29 WMC Admin 3165 2012.08.08
태그

Copyright © 2006 - 2012 WMCPrayer.org. All Rights Reserved.

abcXYZ, 세종대왕,1234

abcXYZ, 세종대왕,1234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